저는 ‘사랑나눔요원’입니다. 사랑의 교실에서 나눈 지식과 행복 공익복무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유치환의‘행복’중에서.
누군가 제게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전 주저하지 않고 그 시간은 바로 지금, 공익복무 기간인 현재 진행중이라 말하겠습니다.
다른 때도 아닌 공익근무가 행복하다니,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요? 물론 처음부터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일을 맡으며 시작한 공익근무였기에 어렵고 힘들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제게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나눔을 통해 주고받는 사랑의 행복을 선물해 준 것 역시 공익근무였습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이를 가능케 했던 답은 ‘사랑의 교실’에 있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사랑의 교실
지난 2012년 3월, 저는 고양시 일산서구청 행정지원과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첫 출근을 하던 날, 잔뜩 긴장한 채로 담당 주무관님의 업무 안내를 끝까지 듣고 겨우 숨을 돌리던 차였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사랑의 교실’에 나가보면 어때?” “예? 그게 뭔가요?” 학교도 아니고 웬 교실인가 하고 어리둥절했습니다.
알고 보니 사랑의 교실이란 구청에서 운영하는 재능나눔 사업이고, 소속 공익요원 중 희망자는 일주일에 세 시간씩 두 차례 저소득층 및 다문화가정의 초등학생 자녀의 학습 지원 강사로 파견되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 특히 어린 학생들을 맡는 일은 그때까지 전혀 해 본 적이 없어서 약간 망설여졌습니다. 하지만 공익으로서 직접 주민들을 만나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보람찬 일이라고 느껴졌고, 어린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쯤이야 쉽고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지원했습니다.
주무관님께선 지원자가 부족했던 터라 다행이라면서, 사랑의 교실 학생들을 대하는 일은 생각 외로 어려우니 정신 바짝 차리라고 주의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때 전 걱정하기는커녕 즐거운 수업에 대한 기대로만 가득 찼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험난한 여정은 꿈에도 상상치 못한 채.
미소를 건넸으나 차가운 벽에 부닥치다
그 다음 주, 당찬 발걸음으로 첫 수업을 진행하려 배정받은 탄현동 주민센터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교실 문을 열고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넨 제게 돌아온 것은 학생들의 놀란 표정과 싸늘한 시선뿐이었습니다. “누구세요?”,“선생님 또 바뀌었어요?”불청객을 대하는 듯한 차가운 반응에 당황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동안 여러 강사들이 번갈아가며 반을 맡아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전 특기인 친화력으로 쉽게 학생들과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 별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습니다. 그 후 한 달여간, 공익근무 중 겪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알지 못했었던 종류의 어려움이 이어졌습니다. 우선 학생들이 낯을 가리고 마음을 꾹 닫아 버리니 기본적인 수업을 진행하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도 돌아오는 건 무표정뿐이었습니다. 수업에 집중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문제를 풀 때도 제가 옆에만 가면 책을 덮고 딴청을 부리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수업을 잘 해 보려고 큰 소리도 쳐 보고 학생들 한 명씩을 붙잡고 타일러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태도는 이제 무시를 넘어 적대감으로까지 변해 갔습니다. 하루는 수업을 마친 후 나가려고 보니 벗어둔 신발 한 짝이 없어져 있었습니다. 제게 혼이 난 학생이 복도 한 구석에 신발을 숨기고 도망간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대놓고 “그냥 전에 있던 선생님이 계속 왔으면 좋겠어요. 좀 있으면 선생님도 또 가 버릴 거면서” 하며 등을 돌리던 아이도 있었습니다.
진심과 사랑으로 정면 돌파를 시도하다
그렇게 한 달여간 수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쉽고 재미있는 수업과는 전혀 다른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잘 대해줬는데 돌아오는 무시와 적대감에 마음이 아파 그냥 다 포기해 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런데, 힘들다고 저 역시 여기서 그만둔다면 학생들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가정 형편상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 얼어붙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녹여 주고 싶었습니다. 결국, 고민 끝에 일단 시작한 이상 사랑의 교실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
공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웃음을 찾을 수 있도록, 힘이 닿는 한 노력하리라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의욕은 앞서도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천만 다행히도 가까이에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이신 어머니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어머니는 초등학생들을 지도할 때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배려해서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지 공익근무로서 주어진 의무감으로 지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과 열정을 다해 학생들을 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름뿐인 ‘사랑의 교실’ 이 아니라, 학생들 하나하나가 사랑을 느끼고 행복하게 되는 교실을 만들리라 다짐했습니다.
그 다짐을 기필코 이루기 위해 퇴근한 후와 주말에도 어머니가 주신 초등교육 지도서를 읽고, 관련 사이트에 접속해서 여러 가지 수업자료를 참조하며 노력을 거듭했습니다.
진심어린 사랑, 변화를 만들다
그 이후 전 매 수업 시간에 ‘행복 전도사’의 자세로 임했습니다. 문제의 답만 알려 주는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들이 공부에 흥미를 가지고 마음도 편해질 수 있도록 진심을 다 해 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수업 전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와 음료수를 준비해서 간식 시간을 갖고 기분좋게 수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교실에서 화를 내거나 얼굴을 찌푸리는 등 부정적인 모습을 더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문제는 옆자리에서 같이 풀어 보고, 틀린 것을 지적하기보다 먼저 맞힌 문제를 칭찬해 주었습니다. 수업을 잘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에겐 친절하게 자세히 설명을 하고, 혼자 힘으로 문제를 맞히면 작은 학용품을 선물로 주니 효과가 아주 좋았습니다.
어려운 교재 내용은 영어 동요 따라 부르기, 창의력 퀴즈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바꿔 준비해 가니 공부 자체를 싫어하던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수업을 조금 일찍 끝내고 교실 안에서 학생들이 원하는 놀이를 하도록 했습니다.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선생님이 술래 할게. 같이 하자!” 하니 학생들은 처음엔 어색해하다가도 제가 더 적극적으로 노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며 함께 웃었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갑자기 왜 저러나 하고 시큰둥하던 아이들도, 점차 제게 공부 이야기 외에도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마음을 열어 주었습니다. 작은 교실 안에서였지만 드디어 노력이 인정받는 듯 해 뿌듯했습니다.
차가운 마음, 결국 사랑 앞에서 녹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독 말이 없고 낯을 가리던 지은이(가명)라는 2학년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지은이는 저와는 물론 다른 아이들과도 대화를 잘 나누지 않았고, 학업 능력이 조금 부족한 탓에 많이 힘들어하는 학생이었습니다. 보충 수업을 해서라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문제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지은이만은 여전히 저를 어려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칭찬도 하고 엄하게 타일러도 보았지만 항상 무표정이던 지은이는 끝까지 변화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은이가 수업 중반을 넘길 무렵에서야 교실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아이였다면 왜 늦었느냐고 핀잔을 주었겠지만, 지은이는 수업에 온 것만으로도 기뻐서 반갑게 맞았습니다.
그런데 자리로 가는 지은이의 발걸음이 약간 이상했습니다. 걱정하며 수업을 마치고 무슨 일이냐고 묻자, 조그만 목소리로 “오늘 계단에서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어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 발목 상태는 더욱 심각해져 혼자서는 일어나기도 힘든 상태였습니다. 일단 응급 처치를 마치고, 집에는 어떻게 갈지 물어보니 버스가 닿지 않아 걸어간답니다.
택시라도 타고 같이 가려는데 그날따라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고 날은 어두워져 갔습니다. 급한 마음에 등을 돌려대며 업히라고 했습니다.
머뭇거리던 지은이는 제 등을 꽉 붙들었습니다. 가까운 줄 알았는데 건널목을 몇 차례나 건너고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아 겨우 도착한 지은이네 집. 땀범벅이 되었지만 무사히 집에 바래다주어 뿌듯했습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또렷이 들려오는 지은이 목소리.“선생님, 고맙습니다!”항상 무표정이던 아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지친 것도 모두 잊게 해 줄 만큼 환한 미소였습니다.
그 다음 수업 시간, 지은이가 웬 비닐봉지 하나를 수줍게 내밀었습니다. “선생님이 정말 고마워서 오늘 간식으로 나온 피자 한 조각을 드리려고 가져 왔어요.” 괜찮다며 한사코 사양했지만 제가 안 먹으면 공부 안 하겠다며 떼를 써서 조금 베어 물었습니다.
또 한번 미소를 지으며 저를 바라보는 지은이를 보니 눈물이 날 만큼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그 이후 지은이는 여전히 아주 활발한 아이는 아니지만, 웃음이 더욱 많아졌고 수업도 열심히 듣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행복은 사랑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2012년 마지막 날, 어느덧 사랑의 교실 1년을 마치고 방학식을 하던 날 학생들의 부모님들로부터 감사 인사를 담은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1년 동안 아이들에게 참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무료 수업이라 사실 별 기대가 없었는데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난생 처음으로‘선생님’,‘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한 번에 이렇게나 많이 들으니 쑥스럽기도 했지만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제가 사랑의 교실을 위해 열심히 준비한 시간과 노력들이 여러 사람에게 행복을 주고, 공익근무요원으로서 조금이나마 사회에 도움이 된 듯해 뿌듯했습니다. 사랑의 교실에 처음 갔을 때처럼, 힘들고 어렵다고 쉽게 포기했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결과였겠지요? 그 날 전 진심을 다한 노력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귀중한 가르침 또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올초 저는 작년과는 달리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랑의 교실 재파견을 신청했습니다.
사랑의 교실에서 깨달은 나눔과 봉사가 주는 행복은 아마 공익근무가 끝나고 나서도 저를 또다시 나눔이 필요한 곳으로 이끌 것입니다.
구청에서 주어진 업무 사이사이의 시간을 쪼개 수업 준비하랴 바쁘지만, 교실에서 환하게 웃을 학생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힘이 납니다. 오늘도 저는 ‘사랑나눔요원’ 으로서 사랑을, 행복을 나누러 교실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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